15C 말 티무르 제국의 쇠퇴 가운데 다시 부흥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유럽에서 중국까지의 실크로드 길목을 독점하고 많은 횡포를 부렸다. 이로 인해 서유럽은 대규모의 모험을 통하여 다른 돌파구를 모색하였는데, 그것이 15∼16C에 걸쳐 신항로의 개척이라는 커다란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정주문명 지역인 유럽과 인도 그리고 중국은 위험하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육로의 길 대신 바닷길을 이용하였고 중앙아시아는 막대한 경제적인 손실을 당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중앙아시아는 티무르 가문에서 다시 징기스칸 가문으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크고 작은 칸들의 전쟁으로 매우 혼란하였다. 이런 혼란함을 징기스칸의 장자의 후손 '무하마드 샤이바니'가 통합하고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의 모체가 되는 샤이바니 왕국을 건설하였다. 샤이바니 왕국은 인도로 물러가 무굴제국(1526∼1858)을 세운 티무르 가문과 이란의 사파비 왕조(1502∼1736) 사이에 계속되는 전쟁을 치루었다.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전반에 걸친 역사에 징기스칸은 진한 발자국을 남겼다. 1206년부터 시작된 그의 정복 활동으로 흑해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넓은 대륙이 징기스칸과 그의 후손의 영토가 되었다. 징기스칸은 넓은 제국을 자식들에게 분할하였다.
징기스칸의 첫째 아들 '주치'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 '오르다'의 가문에서 백 호르드(1226∼1395), 킵착 왕국(1380∼1502), 아스트라한 왕국(1466∼1554), 카자흐 왕국(1428∼1800경)이 형성되었다.
둘째 아들 '바투' 가문에서는 금 호르드(1225∼1380)가 형성되었다.
셋째 아들 '베르케'는 바투 사후에 금 호르드의 통치자가 되었다.
넷째 아들 투카 티무르 가문에서 불가리아 왕국이 나오고, 불가리아 왕국에서 카잔 왕국(1438∼1552), 카심 왕국(1450∼1678), 크림 왕국(1420∼1783)이 형성되었다.
다섯째 아들 샤이반 가문에서는 튜멘 왕국(1224경∼1659), 부하라 왕국(1500경∼1785), 히바 왕국(1515경∼1687)이 형성되었다.
여섯째 아들 테발 가문에서는 노가이 왕국과 시베리아 왕국이 형성되었다.
징기스 칸의 둘째 아들 차가다이에게서는 마베레나흐르 국(또는 동 차가다이 울루스)와 모골리스탄(서 차가다이 울루스)가 형성되었다.
징기스칸의 세째 아들 우구데이는 징기스칸 사후에 전체 몽골의 대칸(1229∼1241)이 되었고 그가 사망한 후 그에 아들 구육(1241∼1248)이 대칸이 되었지만 구육이 죽은 이후 우구데이 가계는 톨루이 가계에 밀려 주도권을 빼앗겼고 몽골제국의 저항 세력이 되어 몽골제국 분열에 큰 역할을 하였다.
징기스칸의 넷째 아들 톨루이에게 4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 뭉케는 금 호르드의 바투의 지원으로 몽골의 대칸이 되었다.
둘째 아들 쿠빌라이는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고 원 제국(1248∼1370)을 건설하였다.
셋째 아들 훌레구는 페르시아를 점령하여 일 왕국(1256∼1344)을 건설하였다.
넷째 아들 아릭 부카는 형 뭉케가 사망한 후 몽골제국의 대칸 자리를 놓고, 둘째 형 쿠빌라이와 싸우다가 지고 포로로 잡혀서 야인생활을 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금 호르드'는 바투 가문이 형성한 왕국을 의미하지만 주치가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둘째 아들 바투에게 장자권을 주었고 바투 시대에 그의 강력한 통치 안에 킵착 지역의 모든 주치 가문의 후손들이 복종하였기 때문에 백 호르드, 금 호르드를 다 통칭하여 금 호르드 또는 킵착 왕국 이라고 불리었다. 1380년 첫째 아들 오르다의 후손 톡타미쉬가 금 호르드를 백 호르드에 병합시키고 이 통합된 왕국이 킵착 왕국으로 이어지다가 킵착 왕국이 약해져가던 15C에 주치 가문의 후손들이 각각 독립하면서 여러 왕국들을 형성하였다.
이 시기에 중앙아시아는 티무르 가문에서 다시 징기스칸 가문으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크고 작은 칸들의 전쟁으로 매우 혼란하였다. 이런 혼란함을 징기스칸의 장자의 후손 '무하마드 샤이바니'가 통합하고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의 모체가 되는 샤이바니 왕국을 건설하였다. 샤이바니 왕국은 인도로 물러가 무굴제국(1526∼1858)을 세운 티무르 가문과 이란의 사파비 왕조(1502∼1736) 사이에 계속되는 전쟁을 치루었다.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전반에 걸친 역사에 징기스칸은 진한 발자국을 남겼다. 1206년부터 시작된 그의 정복 활동으로 흑해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넓은 대륙이 징기스칸과 그의 후손의 영토가 되었다. 징기스칸은 넓은 제국을 자식들에게 분할하였다.
징기스칸의 첫째 아들 '주치'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 '오르다'의 가문에서 백 호르드(1226∼1395), 킵착 왕국(1380∼1502), 아스트라한 왕국(1466∼1554), 카자흐 왕국(1428∼1800경)이 형성되었다.
둘째 아들 '바투' 가문에서는 금 호르드(1225∼1380)가 형성되었다.
셋째 아들 '베르케'는 바투 사후에 금 호르드의 통치자가 되었다.
넷째 아들 투카 티무르 가문에서 불가리아 왕국이 나오고, 불가리아 왕국에서 카잔 왕국(1438∼1552), 카심 왕국(1450∼1678), 크림 왕국(1420∼1783)이 형성되었다.
다섯째 아들 샤이반 가문에서는 튜멘 왕국(1224경∼1659), 부하라 왕국(1500경∼1785), 히바 왕국(1515경∼1687)이 형성되었다.
여섯째 아들 테발 가문에서는 노가이 왕국과 시베리아 왕국이 형성되었다.
징기스 칸의 둘째 아들 차가다이에게서는 마베레나흐르 국(또는 동 차가다이 울루스)와 모골리스탄(서 차가다이 울루스)가 형성되었다.
징기스칸의 세째 아들 우구데이는 징기스칸 사후에 전체 몽골의 대칸(1229∼1241)이 되었고 그가 사망한 후 그에 아들 구육(1241∼1248)이 대칸이 되었지만 구육이 죽은 이후 우구데이 가계는 톨루이 가계에 밀려 주도권을 빼앗겼고 몽골제국의 저항 세력이 되어 몽골제국 분열에 큰 역할을 하였다.
징기스칸의 넷째 아들 톨루이에게 4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 뭉케는 금 호르드의 바투의 지원으로 몽골의 대칸이 되었다.
둘째 아들 쿠빌라이는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고 원 제국(1248∼1370)을 건설하였다.
셋째 아들 훌레구는 페르시아를 점령하여 일 왕국(1256∼1344)을 건설하였다.
넷째 아들 아릭 부카는 형 뭉케가 사망한 후 몽골제국의 대칸 자리를 놓고, 둘째 형 쿠빌라이와 싸우다가 지고 포로로 잡혀서 야인생활을 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금 호르드'는 바투 가문이 형성한 왕국을 의미하지만 주치가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둘째 아들 바투에게 장자권을 주었고 바투 시대에 그의 강력한 통치 안에 킵착 지역의 모든 주치 가문의 후손들이 복종하였기 때문에 백 호르드, 금 호르드를 다 통칭하여 금 호르드 또는 킵착 왕국 이라고 불리었다. 1380년 첫째 아들 오르다의 후손 톡타미쉬가 금 호르드를 백 호르드에 병합시키고 이 통합된 왕국이 킵착 왕국으로 이어지다가 킵착 왕국이 약해져가던 15C에 주치 가문의 후손들이 각각 독립하면서 여러 왕국들을 형성하였다.
출처 : 우 사 모
글쓴이 : 익명회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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