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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일 교수의 『남양주 역사기행(2)』- 별내면 광전리 퇴뫼산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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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뫼산성 전경 |
퇴뫼산성은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의 퇴뫼산에 있는 것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퇴뫼산을 옛성산 또는 이성산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이 퇴뫼산성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퇴뫼산에는 석광(石鑛)이 있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석달 열흘 동안 가뭄이 계속되다가 그 후에 천자가 태어나 그가 장차 왕이 된다는 전설도 있다. 이 석광은 일찍이 무학대사가 그 자리를 잡아 놓았는데 지금은 그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퇴뫼산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고적조에 풍양폐현의 뒷산에 고성(古城)이 있다고 하였고, 『조선고적조사보고서』(1916)에는 이 산성을 퇴계원북산성이라 하였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퇴뫼산성의 둘레가 약 300칸(540m)인데, 외측 사면의 높이가 약 1칸으로 자연석으로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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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뫼산성 북벽 치 성벽 |
광전리 퇴뫼산성은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 퇴뫼산 28-1번지에 있는 해발 370.2m인 퇴뫼산의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퇴뫼식 석축산성(石築山城)이다. 이 산성은 정상부를 중심으로 넓게 축조되어 있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내려 겉쌓기한 돌과 속채움한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일부 구간에서만 온전한 형태의 성벽이 남아 있다.
현재 지표면에 드러나 있는 성벽은 길이 2m정도의 3단까지만 남아있다. 그렇지만 성벽이 무너진 부분도 기단부석은 원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밀조사를 하게 되면 그 원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지는 서문지(西門址)가 하나 있으며, 상부의 폭은 6.85m, 하부의 폭은 2.65m이다. 그리고 산성 내부의 평탄지에서는 토기편과 와편들이 산포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지점이 곧 건물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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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뫼산성 북벽 성벽 |
채집유물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토기편과 기와편들이 주로 발견되고 있다. 와편(瓦片)은 주로 선문으로 된 암기와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회청색 연화문 와당도 수습되었다. 이러한 출토유물과 이 지역 일대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각축장이었음을 감안하게 되면 백제시기의 산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남양주지역에서는 그동안 대규모적인 산성(山城)의 보고가 없었고, 광전리 퇴뫼산성도 둘레가 500m정도의 보루(堡壘)로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정밀 측량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 규모가 훨씬 큰 산성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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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일 교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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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일대학 민족문화과 교수
- 경희대, 동 대학원 졸(문학박사)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남양주시)
- 풍양문화연구소 소장 |
특히 광전리 퇴뫼산성은 포천지역에서 한강유역의 아차산성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차산성과 연결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한 것으로 그 지리적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광전리 퇴뫼산성은 앞으로 정밀한 지표조사를 통하여 산성의 축조연대, 규모와 성격 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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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남양주타임즈 정명현 기자 [2006-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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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일 교수의 『남양주 역사기행(2)』- 별내면 광전리 퇴뫼산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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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뫼산성 전경 |
퇴뫼산성은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의 퇴뫼산에 있는 것으로 이 지역 주민들은 퇴뫼산을 옛성산 또는 이성산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이 퇴뫼산성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퇴뫼산에는 석광(石鑛)이 있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석달 열흘 동안 가뭄이 계속되다가 그 후에 천자가 태어나 그가 장차 왕이 된다는 전설도 있다. 이 석광은 일찍이 무학대사가 그 자리를 잡아 놓았는데 지금은 그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퇴뫼산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고적조에 풍양폐현의 뒷산에 고성(古城)이 있다고 하였고, 『조선고적조사보고서』(1916)에는 이 산성을 퇴계원북산성이라 하였으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퇴뫼산성의 둘레가 약 300칸(540m)인데, 외측 사면의 높이가 약 1칸으로 자연석으로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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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뫼산성 북벽 치 성벽 |
광전리 퇴뫼산성은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 퇴뫼산 28-1번지에 있는 해발 370.2m인 퇴뫼산의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퇴뫼식 석축산성(石築山城)이다. 이 산성은 정상부를 중심으로 넓게 축조되어 있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내려 겉쌓기한 돌과 속채움한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일부 구간에서만 온전한 형태의 성벽이 남아 있다.
현재 지표면에 드러나 있는 성벽은 길이 2m정도의 3단까지만 남아있다. 그렇지만 성벽이 무너진 부분도 기단부석은 원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밀조사를 하게 되면 그 원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지는 서문지(西門址)가 하나 있으며, 상부의 폭은 6.85m, 하부의 폭은 2.65m이다. 그리고 산성 내부의 평탄지에서는 토기편과 와편들이 산포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지점이 곧 건물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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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뫼산성 북벽 성벽 |
채집유물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토기편과 기와편들이 주로 발견되고 있다. 와편(瓦片)은 주로 선문으로 된 암기와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회청색 연화문 와당도 수습되었다. 이러한 출토유물과 이 지역 일대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각축장이었음을 감안하게 되면 백제시기의 산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남양주지역에서는 그동안 대규모적인 산성(山城)의 보고가 없었고, 광전리 퇴뫼산성도 둘레가 500m정도의 보루(堡壘)로 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정밀 측량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 규모가 훨씬 큰 산성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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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일 교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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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일대학 민족문화과 교수
- 경희대, 동 대학원 졸(문학박사)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남양주시)
- 풍양문화연구소 소장 |
특히 광전리 퇴뫼산성은 포천지역에서 한강유역의 아차산성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차산성과 연결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한 것으로 그 지리적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광전리 퇴뫼산성은 앞으로 정밀한 지표조사를 통하여 산성의 축조연대, 규모와 성격 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