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의 기원은 배달국 녹도문
일반적으로 표의문자인 한문의 기원을 은나라의 갑골문자에 찾고 있다 갑골문자는 어디서 온것일까요? 그 이전시대의 중국에는 창힐문자가 있었습니다 중국문자의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창힐은 배달국 14세 치우천황과 동시대(B.C.28세기∼B.C.27세기)의 인물 창일의 고향 산동반도 지역에서는 창힐문자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상부첫번째 그림중 그림의 중간에 있는 비석(倉聖鳥跡書碑)문이 창힐문자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래된 문자가 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신지문자 이른바 녹도문 환단고기 ,태백 일사 ,소도경전본훈 기록에 보면 환웅천황께서 신지(벼슬이름)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의 글로써 천부경을 기록케 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녹도(사슴 발자국 모양)란 문자가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것은 1942년에 발행한 영변지에 실려 있습니다 환단고기 의 저자 계연수 선생이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에서 천부경이 새겨진 옛 비석을 발견한 내용과 더불어 신지 전자(篆字)를 옮겨 놓은 것이지요
환단고기 를 세상에 공개한 이유립 옹도 저서 대배달민족사 에 평양 소재 법수교 고비(古碑)라고 밝히면서 신지 전자를 소개해 놓았습니다 그밖에 구한말 서예의 대가인 김규진 선생이 저술한 서법진결 과 백두용(白斗鏞) 편,해동역대명가필보 (海東歷代名家筆譜) 에도 신지 전자가 실려있습니다
이 신지 전자의 초기 모습이 바로 위 그림 맨 왼쪽의 낭하리 암각화입니다 환단고기 에 인용된 대변설 의 주에 이르기를 "남해현 낭하리에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환웅천황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린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이 문자는 5세 환웅이신 태우의 환웅천황의 막내아들 태호 복희씨께서 육서(六書)의 원리로서 개량하게 됩니다 그래서 좀더 세련된 형태가 되었지요 이것을 용서(龍書)라고 하며 이것이 널리 통용되던 신지문자입니다 주로 중국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다가 14세 치우천황 때 창힐이 배달국의 자부 선생으로 부터 배워 중국에 널리 보급했습니다
그전에는 주로 결승문자(結繩文字: 노끈문자)가 사용되고 있었죠 결승문자는 남미 인디언, 잉카제국에서 통용된 것입니다
창힐이 중원에 유통시킨 신지문자는 훗날 동이족인 은나라 사람들에 의해 한문의 기원이 되는 갑골문자로 개량되었습니다 갑골문자는 동이족이 만들었지만 현대 중국어의 어순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왜냐면 당시 중국은 화하족(중국 한족)과 동이족이 뒤죽박죽 섞이다보니 머릿수 많은 중국인들 언어체계로 통합되었기 때문이지요
중국사서의 고전인 사마천의 사기(史記) 의 기록에 의하면 은나라가 망하고 은나라 왕실의 기자(箕子)가 은나라 유민을 고조선으로 도망쳐 왔다고 합니다 당연히 갑골문자를 들고 왔다고 봐야겠죠 신지문자보다 더 진보된 형태라고 할수 있겠구요 당시 고조선에는 별도의 문자가 사용되고 있었지요 하나는 가림토문 하나는 신지문자
요녕성 여대시 윤가촌에서 출토된 토기의 접시부분에는 신지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거기에다 중국에서 사용된 갑골문자(한자)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리하여 무려 3가지의 문자가 사용되었던 것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열국 제후들의 노력으로 산업생산량과 교역이 급속히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자연 고조선과의 교역량도 급증하게 되었지요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한자사용이 증가하게 되었고 동아시아의 공용문자가 되었습니다 가림토문과 신지문자는 점차 소멸된 것이지요
사마천이 쓴 "사기"에 보면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 ,주나라는 화산족이 세운나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