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일을 회상하며/잃어버린역사를 생각하며

순조의 탄생설과 수락산의 내원암

평암 2008. 10. 18. 12:08

순조 탄생이야기 멀리 갈 것도 없다. 서울 근교 금선사에 가 보자.

북한산 비봉 아래에 숨어 있는 조용한 산사(山寺) ~ 북한산 금선사(金仙寺) 는 신라 진흥왕(眞興王)의 순수비(巡狩碑)가 세워져 있었던 봉우리, 비봉(碑峰) 그 봉우리 아래에 조용한 분위기의 아늑한 산사가 하나 있다. 이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절, 그 절이 바로 북한산 금선사이다.

 

이 절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 영험담(靈驗談)이 전해지고 있는 신성한 기도처로 유명한데, 대표적인영험담으로는 목정굴(木精窟)에서 다루었던 순조 탄생 설화가 있다.

 목정굴은 원래 자연 동굴이었다고 한다. 이태조(李太祖)의 국사(國師)인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여기서 수도(修道)를 했다고 전한다.

 

이런 곳은 거의 신성한 기도처나 석굴 등으로 많이 이용되는 경향이 있고, 금선사 바로 밑에 자리한 것을 보면 금선사 승려들의 수도 장소 및 이곳을 찾은 승려들의 참선 장소로 오랫동안 이용되었을 것이다.

 

조선 22대 군주인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는 장자(長子)인 문효세자(文孝世子)가 5살에 어린 나이에 죽은 이후, 서른이 넘도록 대통(大統)을 이을 아들을 얻지 못해 늘 고심하고 있었단다.

그러다가 1788년경, 대구 파계사(把溪寺)에 머물고 있던 용파(龍波)라는 승려가 한양(漢陽)에 올라와 정조임금을 알현하면서 최근 불교계의 폐단을 시정해 줄 것을 진언 드렸다고 한다.  

 

그러자 정조는 불교 개혁을 약속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걸었으니, 바로 황실(皇室)의 대를 이을 왕자의 탄생을 위해 기도를 부탁한 것이었다.아무래도 인력으로 아무리 거시기를 많이 하고 용을 써도 아들을 얻지를 못하니 이참에 부처님의 힘을 빌려보고자 했던 것이니, 그만큼 정조임금에게 아들을 얻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꽤 강했음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용파는 임금의 부탁에 따라 이 곳 금선사를 찾아와 그 곳에 머물던 '농산'이란 승려와 함께기도에 들어갔는데, 농산은 금선사 자연석굴(목정굴)에서 기도를 드리고 용파는 수락산 동쪽의내원암(內院庵, 남양주시 청학리)에서 300일 이상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기도가 한참 진행될 무렵 용파는 선정(禪定)에 들어 살펴보니 왕자의 몸을 받아 태어날 사람이 농산 스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농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서찰을 보내니 그는 왕자로 환생하기로 마음을 먹고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綏嬪 朴氏)의 꿈에 나타나 왕자로 환생하겠다는 뜻을 밝히고는 기도를 마치고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이때 황실에 무기명의 서찰 하나가 올라왔는데 그 서찰에는 "경술(庚戌) 6월 18일 세자탄강(世子誕降)"이라 적혀 있었다고 하며 바로 그 날에 조선 23대 군주인 순조(純祖)가 울음소리를 내며 세상에 태어났다.

순조가 탄강(誕降)하던 날, 도성(都城) 서북쪽으로부터 맑고 붉은 서기(瑞氣)가 궁궐에 닿아 수빈 박씨의 산실(産室)을 휘감았다고 하는데, 정조는 사람을 보내 그 서기가 일어난 곳을 찾아보게 하니 그 곳이 바로 목정굴이었다. 굴 안에 들어가 보니 좌선(坐禪)한 채로 죽어 있는 '농산'의 시신을 발견, 서기는 그의 정수리에서나왔다는 것이다.

 

농산이 죽어 자신의 왕자로 환생한 것을 알게 된 정조는 크게 기뻐하며 막대한 재정을 하사하여 보잘 것 없던 금선사를 크게 중창(重創)하였으며, 그 때부터 지금까지 순조의 탄신제(誕辰祭)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 전설대로 농산이 정말 죽어서 순조로 환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정조의 득남을 위해 농산이   너무 무리하게 기도를 드리다가 혹은 기도 도중 과로사(?)로 입적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수락산 내원암 사적기(史蹟記)에는 농산, 용파 두 승려가 주고 받은 서신의 내용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하니 이것이 확인되면 이는 분명 농산스님이 불교 중창을 위해서 순조로 태어났다는 것이 입증 된다.